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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性辭典 입동(立冬) 시(詩) 모음 1~17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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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1회 작성일 24-11-07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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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동 / 윤보영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이다.  


무를 뽑고

배추도 뽑아

김장을 담그는.  


내 사랑도 시작이다

가을에 담아둔

따뜻한 생각으로

지금부터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그리움으로 시작이다.



2) 입동 / 이외수


달밤에는 모두가 집을 비운다.

잠 못들고

강물이 뜨락까지 밀려와

해바라기 마른 대궁을 흔들고 있다.

 

밤 닭이 길게 울고

턱수염이 자라고

기침을 한다. 끊임없이

이 세상 꽃들이 모두 지거든

 

엽서라도 한 장 보내라던 그대

반은 잠들고 반은 깨어서

지금 쓸려가는 가랑잎 소리나 듣고 살자.


나는 수첩에서 그대

주소 한 줄을 지운다. 

 

3) 입동 / 나상국


저번 날 서리 내리더니

가는 가을이 아쉬운지

아니면

서둘러 다가오는

겨울이 싫은지

가을비 인지

겨울비인지 모를

경계가 모호한

비가 내린다


쉬 잠들지 못하고

온 밤을 서성대는 밤길

중량천 변을 따라

갈대밭을

저벅저벅 적시며 내린다


이 밤이 새면

입동인데

겨울 눈은 오지 않고

겨울비인지

마지막 가을비인지 모를

비가

입동을 향해 걸어가며 내린다


4) 입동 / 유창섭


살얼음 낀 내를 건너

하얀 山 이끌고 오는 소리

밭은 기침하며 따라오던 바람도

옷을 갈아 입는다

떡갈나무는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나선형으로 지는 낙엽과 작별을 고하고


추워, 추워, 오그라진 발 등위로

쏟아지는 석양 햇살 쌓아두고

그 빛 한 올씩 감아 쥔 채

겨울 잠을 위하여 뿌리로 내려간다


아직도 들판에서는

가는 바람과 오는 바람의 다툼이 계속되고

지켜보던 새들도

낯선 둥지 속으로 숨어 버렸다


온갖 사랑도 미움도 슬픔도 즐거움도

모두 꼬깃꼬깃 접어 넣고

아직도 겨울은 저 밖에 있는데

많은 생각 안고 있는 山이

떨고 있는 소리 들린다


짊어지고 오던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단단한 마음으로 몸을 털며

겨울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당당하다

5) 입동 / 유창섭


입동 끝에 앉아 졸던 햇볕이

낙엽위로 수북수북 쌓이고


그 위에 가을이

투명하게 서서 머무는 사이

떠나도 마음 가까운 사람

흰 서리 되어 다가온다


이제 하나 둘

저승 꽃 피는 세월

떠나며 남겨놓은 길도

산허리에서 끊겨

잡목 숲에 눕고


너의 풋풋한 체취 남은 감나무엔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이 고개 숙여

붉어 있다


하늘은 슬픔처럼 파랗기만 한데

개울가 너럭바위에

햇볕을 널어 말리고 있던

바람이 몸을 떨며 일어서고 있다


 

6) 입동(立冬)에 부르는 노래 / 홍수희


겨울이 오려나 보다

그래, 이제

찬바람도 불려나 보다


선뜻 화답(和答) 한 번 하지 못하는

벙어리 차디찬 냉가슴 위로


조금 있으면

희디흰 눈싸라기도

아프게 불어 제끼려나 보다


코트 깃을 여미고

멀어지는 너의 등 바라보며

쓸쓸히 찻잔이나 기울이고 있을 나


사랑은 소유가 아닌 까닭을

모를 리 없는 죄 많은 가슴

하, 연약한 미련


장밋빛 뺨이 고운 그대여

너무 쉽게 왔다가 너무 쉽게

떠나 갈 그대여!


다시 또 겨울이 오려나 보다

오거든 다시 가려나 보다

 


 

7) 입동 / 나상국


바람에 흔들리며 고뇌하는 가을

이별 무대의 뒤안길


십 일월

스물넷 마디 중

상강과 소설 사이

열아홉 마디


생리통 처럼 왔다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같이

허공에 매달려

눈 감고 귀 기울여

마지막 이자 첫 바이올린 독주회에

심취해 본다


등 떠밀려간 가을의 끝자락에 기대어 서서

점령군의 군화 발걸음 소리 같은

저 시베리아의 바람 소리


총소리보다 먼저와

귓전에 서성거린다


 

8) 입동 / 유안진


유랑하는 내 마음

기슭기슭에

무성히 우거진

탐욕의 잡초더미


젊은 날

비린내마저도

무찔러


절대의 왕국은

오고야 말았구나


그리스도

옛 애인이여


막달라 마리아의 상채기마다

눈바람이 일겠지요

얼음꽃도 피겠지요


그 얼마 뒤에

절대의 사랑은

불이 붙을까요.  


9) 입동(立冬) / 박금숙


살얼음을 타고

잘도 왔구나, 겨울은

상강霜降을 맨발로 지나온

아직은 얇은 외투차림인데


어젯밤 된서리에

꽃잎처럼 찍어놓은 까치 발자국

아침을 물어 나르는

발끝이 시렸나보다


바지랑대 타고 오르다

수척해진 나팔꽃 줄기

가는 허리를 단단히 졸라매고

못 다한 말처럼

여문 씨앗을 뱉어내는데


먼 길 떠나온

벌판 같은 마당 한 편에

싸늘한 아침빛이

계절의 경계선을 긋고 있다.


10) 입동(立冬) 날에 / 최홍윤


첫새벽에

차를 기다리며

길섶 서릿발에 오줌을 갈기는 사람도

따끈한 자판기 커피를 마시던 사람도

한패는 봉고차를 타고

한패는 시외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사라진다


입동 날치고는

포근한 한나절,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어린 시절 따개비처럼 붙어살던

사촌이 전화를 걸어 와

산행 중 시장기에

할머님이 쑤던 메주콩 생각 간절하다고,

간장 달이는 냄새도 그리운데

고향에 가서 감 따다 까치밥만 남기자고, 


전화가 끓기는 순간

가을은 내 기억의 저편으로 획 달아나고

묵은 그리움 하나가 싹트기 시작한다

붙어살기에는

가지 많은 나무가 돼 버린 우리

할아버지의 묵은 논보리 밭에서

어스름 녘에 멧돼지를 기다리며


옛날과 같이

따개비처럼 붙어 매복이나 서 볼거나

한 살 위인 형과 술잔을 나누며

깊어가는 겨울밤에 詩를 건져 볼거나

전화 준 사촌은 인천에 사는 포수다.  

 

 

 

 

11) 입동 / 김미성


영원 할것처럼

내 손 잡아주던 그대는

된서리를 맞고 이별을 고하네요


포근하게 감싸주던

그대의 두 어깨가 그리워 질때면

야속히 불어오는 바람을 뒤로하고


홀로 지새울 날들을

그리움으로 채워 갑니다

한번가면 다시 못 올길

흩어져 내린 무수히 많은 추억


가슴속 책 갈피에 끼우고

조용히 그대의 얼굴을 그려 봅니다

계절에 변화에 민감한 우리는

따뜻한 곳에 눕고 싶고

따뜻한 손을 잡아보고 싶고

따뜻한 마음으로 안고 싶지만


어름장처럼 차가운 바람만이

우리를 감싸고 돕니다

 

12) 입동(立冬)의 시 / 임강빈


땀흘린 만큼 거두게 하소서

손에 쥐게 하소서


들판에

노적가리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주먹을 피게 하소서

찬바람이 지나갑니다.


뒤돌아보는 지혜를 주소서

살아있다는 여유를 가르쳐 주소서


떨리는 마음에 불을 지펴 주소서

남은 해는 짧습니다


후회 없는 삶 이제부터라는 것을

마음 편안히 갖게 하소서 

 

 

13) 입동 이후 / 이성선


가을 들판이 다 비었다.

바람만 찬란히 올 것이다. 


내 마음도 다 비었다.

누가 또 올 것이냐. 


저녁 하늘 산머리

기러기 몇 마리 날아간다. 


그리운 사람아

내 빈 마음 들 끝으로 


그대 새가 되어

언제 날아올 것이냐.


14) 입동 / 김춘수        

    

낙엽들이 길섶에 슬린다

햇살이 햇살의 웅덩이를 만든다

여기 저기

잎 떨군 나무들

키가 더 커지고

조금은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너무 먼 하늘이

귀에 쟁쟁하다 그

목 잘린 무쇠두멍


15) 입동(立冬) 앞에서 / 정군수


옷깃을 여미고

저무는 대지에 무릎을 꿇는다


거룩함이라 치장하던

이름도 벗어버리고

시들어 가는 것들의 사랑을 본다


찬란함도 날카로움도 

침묵으로 드러눕는 산하 곁에서

따라 눕는다


가슴을 몰아쳐 오던

푸른 언어는 잠기어 가고

갈색의 위대함으로

세상을 보듬는다


백마처럼 눈을 몰고 올

계절 앞에서

들풀들이 뿌려놓은

씨앗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묵은 것을 베어버리고

신선하게 일어서는

낯익은 얼굴들을 기억한다  

 

16) 입동(立冬) / 박광호


나무가 잎들에게 말 한다

이젠 헤어지자!

사랑하기에 함께 할 수 없는 너,

너를 추운 내 곁에 언제까지나

머물게 할 순 없지 않은가


마치 우리들의 이별과 같다고 할까?

한잎 두잎 미련의 손을 놓고

떠나보내는 입동의 나무들


하늘 뜻에 순응하고

부활의 신앙으로 열심히 일하며

순리로 살아왔기에

잎들은 겸허히 운명을 맞는다.


겨울의 긴 ~~ 강을 건너

새봄이 찾아들면

어김없이 바라볼 수 있는

낙엽의 부활을 보면서


인간도 그들과 함께

사계(四季)를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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