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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화 어느 의사의 죽음에 대한 所懷(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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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271회 작성일 24-09-1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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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비슷하게 벌거벗고 순진무구하게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천태만상 제각기 다르게 죽는다.


착하게 살았다고 편하게 죽는 것도 아니고

남한테 못할 노릇만 하며 살았다고 험하게 죽는 것도 아니다.


남한테 욕먹을 짓만 한 악명 높은 정치가가

편안하고  우아하게 죽기도 하고


고매한 인격으로 추앙받던 종교인이 

돼지처럼 꽥꽥거리며 죽기도 한다.


아무리 깔끔을 떨고 살아봤댔자 자식들한테

똥을 떡 주무르듯 하게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은 각각 제나름으로 죽는다.

이 세상에 안 죽을 사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죽을 때는 자기만 죽는 것처럼 

억울해하는 건 이런 불공평 때문일까 !?


무도 없는 무, 

호기심조차 거부하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때문일까.


육신의 사멸은 의학이 예측할 수 있는 경과를 밟지만

정신의 사멸은 전혀 아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정신의 사멸을 지켜 보기가 힘든 것은 

의사로서의 이련 무력감 때문일까. 


-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는 1980년 3월에 불란서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폐수종으로 입원하여 죽기까지 약 한달 동안 극도의 발악을 하며 보냈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을 향하여 고함을 치며 절규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 

곁에 있는 아내에게조차 묻지 못했습니다.

자유라는 수많은 수필과 글을 남겼지만 그의 마지막은 실로 비참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정부에서는 이런 그의 모습들을 극비에 붙였지만

신문들은 샤르트르의 죽음에 대하여 떠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반면 독일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 훼퍼는 세계 대전 중에 독일의 수용소에서

나치에게 항거하다가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간수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데 그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자기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감방에 있던 자기의 동지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동지 여러분! 이제 나에게는 죽음이 왔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감방을 나서는 그의 모습엔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넘쳐 났습니다. 

미친 소크라테스라는 별명을 가진 디오게네스는 

"죽어서 어떻게 묻히기를 바라느냐" 는

물음에  "얼굴을 아래로 향하게 해서"라고 

엉뚱한 답을 내놓을 만큼 죽음에 대해서도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는 90세에 죽었다고 하는데, 문어를 산 채로 삼켰다거나 

숨을 억눌러 자살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프란시스 베이컨, 겨울날 냉동닭을 만들기 위해 닭에게 눈을 퍼먹이다가 

도리어 자신이 동사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영양실조로 부종이 생기자 

소똥으로 치료하려 했다가 소똥 속에서 질식사했고,


페리안드로스는 자신이 죽을 자리를 비밀에 부치고 싶어

자기 자신에 대한 삼중 청부살인을 했습니다. 


칸트는 종종 신경증적 강박에 시달렸고 

죽음이 가까워지자 친구들 만나기를 거부했으며,


마지막 날 제자가 와인에 물을 타서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자 

칸트는 생애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곧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는 

양면처럼 늘 함께 가는 질문들입니다.


죽음 이후엔 아무 것도 없으며, 먼지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죽음은 제한적인 육체, 불행한 삶을 떠나 영혼의 자유를 만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고도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죽음이후,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죽을 때까지 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편안한 모습, 아름답게 임종을 맞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죽은 자를 위함이 아닌, 

산 자를 위한 마지막 배려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갑작스런 죽음, 임종을 하지 못해 더 크게 슬퍼하는 사람에 대한 위로의 말로

" 편안하게 가셨다 "라고 제 입으로도 수차례 말한 기억이 있지만, 


사실 저는 어떤 것이 편안한 죽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VENTILATOR CARE/인공호흡기 에 의지하다가 심 정지로 사망 선고)






   하루를 사는 것은 하루를 죽는 것인데...
    [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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